
상실에 저항하는 문헌학자이자 고고학자.
그의 다뉴브는 미시적 감각과 두근거림으로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
[과학은 이성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며, 마침내 세상은 좋은 것이고 서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 준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존재의 빈 공간을, 즉 어느 날 어느 시간에 갑자기 방의 사물들 사이가 뜨면서 끝없는 비탄과 무의미함으로 사물들을 빨아들이는 그 무無를 채워나가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고단한 현재가 후손들에게는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낯선 과거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좀처럼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각자는 몰이해의 희생자이자 몰이해를 범 하는 죄인이다. 나보다 열 살이나 열다섯 살 어린 사람은 이차대전 후 이스트리아 사람들의 집단이주가 나에겐 현재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린 사람에게 1968년, 1977년, 1981년이 서로 다른 시기로 보인다는 사실을 실은 나도 이해하기 어렵다. 나에게 이 시기는 각각 차이가 크고 충격은 달라도 물결치는 초 원의 수풀처럼 서로 포개어져 나란히 정렬되어 있는데 말이다.]
[거대한 이 침묵 사이로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물거품 항적을 남기며 나아가는 활짝 펼친 돛, 삶이란 게 이런 걸까 하고 꿈꾸 게 한다. 이 바람을 맞으면서, 되는 대로 가거나 메마른 감정에 허우 적거리는 이는 죄라도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카프카의 독신자처 럼 자신을 감싸고 있는 자잘한 공포증 뒤로 꼭꼭 숨는다. 사물들 앞에 막 같은 게 있다. 이 막이 사물들을 가려 그것을 갈망하는 것도 막아 버린다. 이렇게 내적으로 메마른 순간에는 탁 트인 들판이 두렵다. 그 래서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폐쇄된 방을 원하게 되고, 그 방 안으로 몸을 피해 비열한 자기 방어를 꾀하게 되는 것이다.]
[카프카와 페소아는 어두운 밤의 끝자락이 아니라, 점점 더 불안해지는 보잘것없는 무채색의 끝자락을 여 행했다. 그 속에서 자신이 삶의 옷걸이일 뿐이라는 걸 깨닫고, 그 밑바닥에서 이런 인식 탓에 극단적으로 진실에 저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분열은 실존의 불완전함이요. 결함이다. 우리의 삶이란 세세 한 이 시간 파편들로 흩어지고 있으며, 그러다가 결국 그 끝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하는 나치의 폭력을 새삼 또다시 비난하는 것은, 인종과 색깔 이 다른 또 다른 희생자들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폭력들을 잠재우고, 이 반파시즘 신앙고백으로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는 일이 많은 사람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정리定理를 설명해 줄 기하학적 정신이 필요하다. 볼 수 있는 것의 왕국은 직각자와 컴퍼스로 측량되고, 운명의 곡선은 그것이 자리 잡을 가로세로좌표 체계 덕분에 드러난다.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인식만이 가장자리까지 가서 그 경계 너머로, 막달레나의 빛 혹은 프란체스카의 침묵이 오는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감춰진 원천에서 솟아 나오는 이 빛과 이 침묵, 저 너머에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이 분명하고 기하학적이듯, 이들 역시 구별하기 어려운 혼란 은 싫어한다. 이 빛의 기하학은 방정식 수열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점 화시킬 질서와 명확함을 줄 수 있다.]
[강자들, 즉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고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려 애써 는 사람들에게 삶이란 게 녹록지 않듯이, 그녀에게 삶은 녹록지 않았고 현재도 그렇다. 자신의 불확실한 실존을 인식하며 의식을 갖고 사 는 사람에게 삶은 버겁다. 반면 약자들, 다시 말해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며 모든 삶의 무게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 지우고 자신은 고상하고 아름다운 영혼인 것처럼 온갖 응석을 다 부리며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삶은 너그럽다.]
[역사·사회·문 화의 차이가 더불어 사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 사실이 폭력적으로 드러날 순간이 가까이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미래는, 이 증오의 광산 도화선에 불이 붙어 새로운 빈 전쟁이 사람들을 외국인과 적으로 만드는 것을 우리가 막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즉 해석의 유희, 사회발전 과정의 자동화에 뿌리내린 권력의지, 모세혈 관처럼 사방팔방으로 넓게 퍼진 욕구의 조직체, 집단 리비도의 불분 명한 흐름이, 현실의 법칙들을 하나하나 규명하여 수정하고 세상을 판단해서 변화시키려는 사고를 대신해 버린 듯하다. 문화공연이란 것도 혁명사상의 끝물에서 나온 듯하다.]
[우리 몸의 이 완벽하고 불안한 지형학, 신경발단조직과 우리 몸을 보호하는 점막조직들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소네트를 만 들거나 변화시키게 하며, 얼굴에 매료되게 하고 신을 상상하게 만든다.]
[정치 투쟁은 모든 것이 그 안에 담겨 있는 신비한 교회가 아니라, 단 한 번도 지상에서 벗어나본 적 없고 오류에 노출되어 있지 만 그 오류를 고쳐나갈 준비가 된 일상의 일이다.]
[전자계산기와 인공지능 역시, 그것들이 장착돼 작동시키는 우주선처럼,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이 우주에 속한 천체 음악의 일부다. 왈츠의 영원한 귀환에는 영원한 어떤 것이 있다. 그것에는 과거의 메아리가 있다. 한 늙은 여인이 말했던 대로 슈트라우스가 죽으면서 끝난 프 란츠 요제프의 시대의 메아리가 있을 뿐 아니라, 미래로 계속 투사되는 과거가 있다. 우주를 여행하는 먼 과거 사건들의 이미지가, 언제 어디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미지를 받아들일 어떤 사람에게는 이 미 미래인 것처럼 말이다.]
[예술을 본뜬 기술의 유혹에서 유발된 작은 지적 실망]
[어제 나는 삼각주박물관에 있었고, 지금은 삼각주에 있다. 냄새, 색 깔, 반사, 물에 비친 흔들리는 그림자,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날개, 강 물처럼 흘러가는 삶은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며 우리로 하여금 이런 것들을 깨닫게 해 준다. 마차에 앉은 호메로스 왕처럼 배 갑판에 앉아 있는 오늘 같은 즐거운 날에도 우리의 감지능력은 떨어지고 있고 감각은 수천 년간 위축되어 왔다는 것을,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에서 들려오는 메시지를 다르게 듣고 냄새 맡는다는 것, 삶의 흐름으로부터 일찌감치 분리되었고 형제애를 상실했으며 서로를 부정한다는 것, 존경하옵는 '나'라는 자아는 초음파 소리처럼 들리는 그 속에서 사이렌의 노래를 분간해내지 못하기에 더는 율리시스처럼 자신의 몸을 묶게 하고 선원들처럼 자신의 귀를 막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