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했는데

망각 일기

에뷔테른느 2026. 3. 17. 16:23

불쑥,
아침에 일어나 기록을 쓰기 시작했다. 거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거의 매일 기록을 썼다.
그리고 1년쯤 지난 아침 기록을 그만 쓰기로 했다. 시작할때와 마찬가지로 불쑥.
마지막 기록은 '바다 갈까,' 이다.

일기, 편지, 독후감, 글짓기, 입시논술,
학생시절 모든 종류의 글쓰기는 유쾌하지 않은 숙제였다. 누구나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의무.

예쁜수첩에 일기(와 스케치 혹은 낙서)를 쓴 적이 있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좋은 의미로 벅찼던 시절일지도 모르겠다. 매일의 절묘한 순간의 기록들.
확인하고 싶지만 예쁜수첩은 이미 갈가리 찢어 버려졌다.

키보드를 눌러 남긴 기록들은 차곡차곡 웹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확신을 좇거나 세상과 사람에게서 매번 달아나고 있을 뿐인 어린 나르시스트의 기록들. 이 기록은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시작했을 무렵 뜸해졌다.
요즈음은 뾰족한 감정이 뭉툭해질 때만 가끔씩 기록을 쌓아 둔다.

언젠가, 오랜 기억의 무게가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기억이 두근두근 고동칠 때. 시간 속에 홀로 남겨진 기억이 점점 강해질 때.
어쩌면, 그때 다시 기록을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선형적인 시간이 실제 시간, 모든 시간, 늘 흐르고 있는 영원이라는 시간을 압축해 놓은 시간임을 이토록
선명하게 이해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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