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필요한 여자의 홀로인 삶과 무쓸모한 취향에 1미터짜리 악어 미소를 짓는다. 다시 《아우스터리츠》와 《이민자들》을 빌려야겠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기하학 교과서에서는 평행선을 이렇게 정의한다. 영광을 떨치는 신의 의지가 없다면 영원히 만나지 않는 두 개의 직선.]
[칸트는 《법이론》에서 "결혼은 성별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생식 기관을 평생 동안 공동 소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맺는 결합"이라고 했다.
칸트는 내 남편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
물론 데카르트나 뉴턴, 로크, 파스칼, 스피노자, 키에르케 고르, 라이프니츠, 쇼펜하우어, 니체, 그리고 비트겐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칸트 역시 친밀한 관계를 맺거나 가정을 꾸리지 않았다.]
[자기 개성을 보란 듯 내세우는 사람보다 더 순응적인 사람은 없다.]
[이 나이가 되니 삶은 계속되는 패배의 인정이다. 노년과 패배는 끝까지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피를 나눈 형제이다.]
[살을 대고 있는 두 청소년은 더할 나위 없이 살아 있고 더할 나위 없이 밝다. 그 앞으로, 유리창에 창백한 은백색으로 반사된 나의 모습이 겹쳐진다. 나는 움찔한다. 불멸의 청춘 곁에 선 불멸의 노년.]
[새 음반을 사는 날에는 주변이 온통 전쟁이고 혼란이 지배할지언정 나는 승자였다.]
["탁월한 인간에게 어울리는 태도는 오로지 이 것, 스스로 쓸모없다고 여기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 무익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 지극히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특정한 철학적·형이상학적 사유의 규범을 적용하는 것."]
[내 몸은 온갖 문장과 순간들로 가득 차 있고, 내 마음은 사랑스러운 표현으로 빛나지만, 몸도 마음도 타인의 손길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읽은 작가들과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지만 그들의 재능은 갖고 있지 않다. ... 나는 고독할 뿐이다.]
[타인의 존재는 그게 누구든 나에게 어색함을 준다.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닌 느낌이다. ..."고립은 나를 당신과 닮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었고, 그것은 점이 되는 꿈이 아니었다. 별을 꿈꾸지는 않았지만 예술성이 어느 정도 있는 대서사시 속에 대사가 없는 작은 단역 정도는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인을 꿈꾸지는 않았다. 착각에 빠져 있지도 않았고 오만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점에 그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나의 개성을 미덕으로 여겼고 덕분에 집단의 감정과 광기 로부터 보호받았다고, 가족과 사회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위로가 됐다.]
[나는 주류 문화에 잘 끼지 못하는 남녀를 좋아한다. 알바로 데 캄포스가 말한, 이곳뿐 아니라 모든 곳의 이방인, 삶도 영혼도 부차적인 사람 말이다. 나는 아웃사이더가 좋다. 빠져나갈 수 없는 저주받은 성에서 거미줄 무성한 복도를 헤매는 유령.]
[나는 무해함의 화신이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이나 애 정을 바라지 않고 어떤 감정도 기대하지 않는다. 적이 생길 만큼 눈에 띄는 존재가 되길 바란 적도 없다. 태생적으로 수줍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늘 외톨이 신세지만 언젠가 참나리로 꽃피어 요란하고 화려한 향기를 뿜고 싶다는 깊은 욕망을 품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단지 타인이 내 삶을 방해하길 바라지 않기 때문에 나 또한 타인의 삶을 방해하지 않고 살고자 한다.]
[타인은 기억 속에서만 실체를 가지는 희뿌연 현상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도 여러 장면들의 결합, 내 머릿속에 축 적된 문장들의 결합으로 이해하고는 있지만, 엄마보다는 그들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실존하는 사람들보다 문학 속 등장인물의 빈칸을 더 잘 채울 수 있다. 더 노력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우리 엄마보다 롤리타의 엄마를 더 잘 알고 우리 엄마보다 롤리타의 엄마를 더 잘 느낀다고 감히 말해본다. 내 어머니의 진짜 얼굴보다 렘브란트 어머니의 초상화를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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