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과는 언제나, 어디서나, 끝내 실패.
개미나 벌처럼 타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어떨까.
[예술과 상상력뿐만 아니라 심지어 시장도 공식 에서 형식을 분리하고, 인공에서 자연을 분리하고, 상품에서 인간성을 분리하는 일에 가담하고 있다.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시도하는 예술은, 어떤 고상한 영역에서는 경멸의 대상으로도 쳐주지 않는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도 변해버렸다. '진실'이라는 말도 그것의 부재가(모호성이) 존재보다 강렬해서 따옴표에 가두어야 할 정도다.]
[타자의 마음을 빼앗아 내 자신의 거울 속으로 도로 데리고 들어오고 싶어 한다. 어떤 경우에든 경계심을 갖든, 헛된 존경심을 느끼든 인간은 타자에게 개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내 자신은 꼭 지녀야 한다고 고집하는 그 개인적 특성을 남에게는 허락지 않는 것이다.]
[허구적 서사는 타자, 즉 이방인이 되거나 혹은 이방인이 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통제된 야생 상태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동정심과 명료한 눈을 가져볼 수 있고 자기 성찰의 위험을 감수할 기회도 얻는다.]
'읽기는 했는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노아와 슈바르츠와 쿠로와 현 (0) | 2025.12.27 |
|---|---|
| 첫 여름, 완주 (0) | 2025.12.26 |
|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 (0) | 2025.12.25 |
| 아무도 보지 못한 숲 (0) | 2025.12.24 |
| 고양이 행성의 기록 (0) | 2025.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