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나 성장하고 쇠잔해지다가 조금씩 소멸해가는 계절의 끝에 나타난 문 너머의 숲은 모든 계절이 겹쳐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선명하게 숲을 빠져나갈 수 있는 외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세상의 모든 시계가 작동을 멈추면서 눈앞의 풍경은 정지 상태가 되고 소리는 증발한다. 있어도 상관없고 없어도 그만인 우주의 여분 같은 미완성의 공간에 혼자 들어와 있는 기분은 황홀한 고독함에 가깝다.]
[그러나 실체 없는 고통의 분량이란 언제나 모자라거나 넘칠 수밖에 없다는 걸 미수도 모르진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쓰다가 내다 버린 시간의 더미 같은 이 방을 그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음식의 맛을 음미하는 일 없이 그저 열심히 먹기만 했어. 몸에 너무 배서 지루하기만 한 노동을 하듯이 말이야.]
[그저 진짜 혼자가 되었다는 기분이 모래를 삼켰을 때처럼 자주 입안에서 깔깔하게 씹혔을 뿐이다.]
[그 1년 동안 질투와 초조의 줄어든 분량만큼 패배감의 분량이 차곡차곡 들어왔다.]
[차가운 벽돌 담 앞에 서 있던 미수는 조각나고 부서지고 그 어느 때보다 악취가 진동하는 미완성의 언어들이 공기가 가득 들어간 풍선들처럼 툭툭 터지는 광경을 신기하다는 듯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세상은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테두리에서부터 젖어 들고 있었고 미수는 축축해지는 소매 밑단이나 스니커즈의 신발 끈이 어떤 이야기의 매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듭이 풀리면, 아주 긴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 불가해한 문장들이 실타래 처럼 풀려나와 어디로 가야 하고 어느 지점에서 숨죽여야 하며 어떤 모서리에서 목 놓아 울어야 하는지 알려 줄 것만 같았다.]
[태어나 성장하고 쇠잔해지다가 조금씩 소멸해 가는 계절이 그렇게 제 몫의 운명을 따라 한 바퀴를 돌 때까지 미수는 늘 거리에 있었고 쉬지 않고 걸었다.]
[오늘의 모든 어제들에 배당된 태엽을 차근차근 소비해 가면서 맨 마지막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다가가는 그 초침 소리가 소년는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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