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했는데

살림 비용

에뷔테른느 2025. 10. 26. 02:50

삶의 비용으로 만든 글을 부끄럽게도 어떤 비용도 없이 읽었다.


[그렇대도 결혼 생활은 남은 평생 내 뒤를 밟을 유령이기도 하다. 주역들을 그보다 비중이 작은 배역으로 격하시키지 않으면서도 끝끝내 지속하는 사랑에 대한 내 오랜 갈망, 이 갈망의 상실을 나는 평생 애도할 거다.]

[단어는 마음을 열어젖혀야 한다. 마음을 닫게 만드는 단어는 누군가의 존재를 무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불확실하던 그 시절, 내가 불확실에 내재된 불안을,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음에서 오는 불안감을 감당할 수 있게 해준 얼마 안 되는 활동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서러움에서 부화한 걸지도 모를 구상이 떠오르거나 다가 올 때마다, 이 착상이 내 집중된 주의력은 물론이고 분산된 주의력을 과연 이겨 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다수의 구상을 시간의 여러 차원에 걸쳐 펼쳐 보이는 것이 곧 글 쓰는 삶이라는 원대한 모험이다. 그런데 내겐 글을 쓸 곳이 없었다.]

[여성성이라는 유령은 허상이자 망상이자 사회적 환상이다. 연기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인물이며, 그 역할 (희생, 감내, 고통의 와중에도 발랄함을 잃지 않기)을 연기하다 끝내 이성을 잃고만 여자도 수두룩했다.]

[가부장제의 가면이 기형적이고 도착적이라는 걸 남자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에게 가면은 상처로부터 자기를 보호해 주는 유용한 수단이다. 가면에 장식이 많이 붙을수록 그는 여자와 아이와 다른 남자를 위압하면서도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면은 다른 남자들의 눈에 낙오자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부터 그를 보호 하기 위해 존재한다. 남자가 성공적인 사람으로 간주되는 이유가 여자들을 (가정에서, 일터에서, 침실에서) 진압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면, 사회는 이런 측면에서 실패하는 것을 위업으로 여겨야 마땅하다.]

[여자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자기 이름을 지워버린 사회의 서사와 결별할 때, 그가 맹렬한 자기 혐오에, 미칠 것만 같은 고통에, 눈물이 맺지 않는 회한에 빠지리라는 게 사회 통념이다. 이런 것이 여자를 위해 마련된, 그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손에 쥘 수 있는 가부장제의 왕관에 박힌 보석들이다. 눈물지을 순간이 넘치는 건사 실이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 보석들에 손을 뻗느니 검고 푸르스름한 어둠을 두 발로 통과해 지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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