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했는데

언다잉

에뷔테른느 2026. 5. 14. 08:20

고통에 대해 생각할 때, 역사/젠더/계급/빈곤/차별/돌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 모를 것이다. 모른 척할 것이다.


[지금 당장 암 환자가 된다는 것은 몸들의 자기 은폐적이고 벌거벗은 역사가 별안간 발하는 충만한 현존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과 같다.]

[돌봄 노동과 데이 터 노동은 모종의 역설적인 동시성 속에 공존한다. 즉 두 노동은 대부분 여자가 수행한다는, 그리고 역사 속에서 여자의 일로 간주된 다른 모든 노동과 마찬가지로 전혀 눈에 띄지 않고 간과되곤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노동은 보통 부재할 때야 존재감을 얻는다. 깨끗한 집보다 지저분 한 집이 더 눈길을 끄는 것처럼 말이다. 별다른 노력이 투 입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배경은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돌봄 노동과 데이터 노동 은 요란하지 않고, 일상적이고, 끈질기며, 절대 완수되지 않는다]

[우리 존재가 날마다 유지된다는 것은, 우리가 매번 설거지를 하듯, 매번 파멸의 길을 피하려 애쓰고 있다는 의미다.]

[질병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치료는 절대 이데올로기 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망률에는 반드시 정치가 깃들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고, 나는 여기에 홀로,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내 절반은 떨어져 나가 있고 우리의 절반은 사 라져 버리고 없고, 우리 중 절반은 유령 또는  않는 존 재고 우리 중 절반은 죽은 존재며, 내 절반은 어디에서도 기억될 수 없거나 찾을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비극의 비극 속에는, 남들 것과 크게 달라 보이 지 않는 내 모순 속에는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슬프고 잘못되고 터무니없는 것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계속 불가사의하고도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남아 있으며, 나는 그런 것들 안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시각만이 유일한 감각은 아니라는 사실에 기대를 걸 수 있듯이, 이 세상의 운명은 음성적인 것들의 약속에 의지하고 있다.]

[역사의 테두리 밖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자 연사로 죽는 사람도 없다. 죽음은 절대 중단되지 않으며, 보편적인 동시에 보편적이지 않다. ... 죽음은 우리가 누구인지 신경 쓰며 또 신경 쓰지 않는다. ... 필멸하는 여느 존재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살아 있는 상태에 과하게 붙들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내 일기 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문명의 충돌 속에서—산 자와 죽은 자의 충돌 속에서—나는 내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알고 있다. 어느 쪽인지 입 밖에 낸 적은 없지만.]

'읽기는 했는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는 듣기  (0) 2026.05.14
너의 나쁜 무리  (0) 2026.05.13
신앙  (0) 2026.05.11
슬픔의 물리학  (0) 2026.05.10
체공녀 강주룡  (0) 2026.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