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성장은 아이가 열두살이 되기 이전에 모두 완료되었다. 성장하는 방법을 잊은 건지도 모른다. 아이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았다. 아이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단 한 순간에, 사라지고 싶다.
[3월 초순의 최고기온은 겨우 영상권에 머무르고, 속눈썹처럼 가느다랗게, 새싹이 돋는 자리마다 겨울이, 죽어간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없다. 지난해의 여름이 유령처럼 되돌아오면, 오늘의 봄이 병들어, 계절은 죽어가기를 반복하고, 아이들이 죽은 자리마다. 또 다른 아이들이 태어날 것이다. 이번 해가 지나면, 다음 해가, 다음 해가 지나면, 그다음 해가 온다.]
[아이는 눈물을 흘릴 줄 알았고, 울부짖을 줄 알았고, 울먹일 줄 알았고, 울다 웃을 줄 알았고, 슬펐고, 서글펐고, 우울했고, 쓸쓸했고, 공포를 느꼈고, 두려웠고, 무서웠고, 겁에 질렸고, 끔찍했고, 참혹했고, 처참했고, 비참했고, 수치스러웠고, 부끄러웠고, 섬뜩했고, 선뜩했 고, 아팠고, 견딜 수 없이 아팠고, 참을 수 없이 아팠고, 말할 수 없이 아팠고,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아팠다.]
[아이들은 의미심장한 눈짓을 교환하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의미도 심장도 없다.]
[그때, 를 그 시절, 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시절이라는 단어는 과거의 시간을 지나치게 아름답고 그리운 것으로 만든다.]
[그림자의 길이로 너를 묘사할 수 있을까. 억센 꿈을 꾸던 밤마다 빠져나가던 이의 개수로 너를 설명할 수 있을까. 사물의 표면에 묻어난 지문으로 너를 감식할 수 있을까. 쌓아 올린 공책의 두께로 너를 가늠할 수 있을까. 은하수처럼 흩어진 흉터 들로 너를 알아볼 수 있을까. 별자리처럼 흐트러진 흉터들로.]
[일상에서 삶으로 돌아갈 것. 삶에서 생으로 돌아갈 것. 생에서 죽음으로 돌아갈 것. 죽음을 지연시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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