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했는데

호라이즌

에뷔테른느 2025. 9. 17. 20:20

어마어마한 아름다움 앞에서 품는 부서지는 세계에 대한 회의와 후회, 그리고 연민과 공감이 그런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우리는 어둠일 수 있고 빛일 수 있다.
어딘가엔 선명한 이야기가 있겠지. 애쓰는 사람들이 있겠지.


[하지만 긴 인생이란 불완전하게 기억된 결심들이 연거 푸 쏟아져 내리는 일종의 폭포로 이해할 수도 있다. 초기에 품었던 결심 중 어떤 것들은 희미하게 지워진다. 잃어버린 기억과 배신, 믿음의 상실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우회로를 거치고도 이어지는 결심들도 있다. 또 어떤 결심들은 세월이 흘러도 약간만 변형된 채 계속 유지된다. 예상치 못한 트라우마와 상처를 만나 면 차는 언제든 도로 밖으로 탈선할 수 있고, 그러면 그 사람은 영원히 목적지를 상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테면 불타오르 듯 뜨거운 얼굴에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 닿는 것과 같은 의도치 않은 순간에 솟아나는 가늠할 수 없는 숭고함이 계속하겠다는 결심을 되살릴 수도 있으며,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자기 회의와 후회가 주는 삶의 무게를 줄여줄 수도 있다. 혹은 휘청거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아름다움 앞에 선 한순간이 한때 그 사람이 품었던, 큰 의미를 지닌 삶을 살겠다던, 자신의 기대에 부합하는 삶을 살겠다던 결심에 다시금 불을 당길 수도 있다.]

[나는 미성숙한 수많은 남자아이가 그렇듯 모종의 지위를 성취하려는 필사적인 마음에 허둥대기만 할 뿐, 그 갈망을 명확히 구현하지는 못했고 자의식만 가득했으며 방어적이 었다.]

[여러 해에 걸쳐 내 안에서 종교를 대체하게 (혹은 어쩌면 강화하게 된 믿음 체계 속에는, 생명이 없는 어떤 대상에는 그 질감이나 색채만큼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영적 차원이 있다는 확신이 있다. 나는 이것이 환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멩이 하나에서 '의미를 짜낼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어떤 기회가 특정한 종류의 우호적인 고요함과 함께 주어질 때 하나의 돌멩이는 제가 지닌 의미의 일부를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도 있다.]

[자기 가족에게 먹을 것을 제공 한다는 것은, 그 먹을 것이 물범 고기든 자루에 든 곡식이든 아보카도 과육이든, 죽음이 생명을 공급하는 방식에 관한 불편한 질문과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 여기서 행동한다는 것은 자 신이 범하는 죄를 직시하는 일, 자신의 일족이 계속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른 생명을 빼앗기를 선택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런 일을 명령한 자들을 규탄하고 그 정책을 수행한 자들을 비난하며 그들을 비인간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인간다운 행동이다. 우리가 그 어둠이다. 우리가 빛이기도 하듯이.]

[나는 매일같이 인간의 삶에 대한 화학적, 정치적, 생물학적, 경제적 위협에 관한 글을 읽는다. 이런 문제는 상당 부분, 인간의 문화적 세계와 인간 이외 존재들의 세계 사이에 확실한 경계를 그으려는 일부 사람들의 고집 때문에, 혹은 그 세계를 침략하거나 능률화하거나, 그저 물질을 보관하는 창고나 단순한 풍경으로 일축해버리려는 시도 때문에 발생한다 고 생각한다.]

[인간 세계의 운명을 인간 이외 존재들의 세계와 분리하려 애쓰며 나아가던 우리는 바로 그 위협들 앞에서 별안간 멈춰 서게 되고, 비로소 생물학적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바로 자연은 우리 없이도 잘 지내리라는 현실을.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제 인간의 안락과 이득을 위해 자연 세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어떻게 협력해야 언젠가 자연 세계 안에서 우리가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적합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다.]

[물론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이 세워둔 좋은 행동에 대한 기준에 완벽히 부합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언제나 산만함과 무관심을 탈출구 삼아, 직면하기 너무 힘들거나 참혹한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도 내가 경험한바, 세상 모든 모퉁이에는 아직도 그러한 낙담과 패배를 뚫고 계속 밀고 나아가며, 자신의 상처를 동여매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보살피는 많은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각자 떨쳐내려 기도하거나 소망하거나 노력하는 외로움의 무거운 짐은 사랑하지 못한 결과다. 사랑의 실패는 사람들이 각자 털어내려고 기도하거나 희망하거나 노력하는 인간의 무거운 외로움을 보여줄 뿐이다.]

[광활하고 균질적인 공간의 부피를 가득 채우는 시간]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단지 상상력의 실패일 뿐이라고.]

[예술은 즐거움을 주는 일을 열망하지 않는다. 예술의 갈망하는 것은 대화다.]

[해리슨은 언어란 단순히 언어와 문법만이 아니라, 다른 언어에서는 인식되지 않은 생태 환경과 잠재력을 드러내는 것임을 강조한다. 또한 각각의 언어가 또 하나의 역사, 또 하나의 신화, 또 한 무리의 기술들, 또 하나의 지리학을 품고 있음을 힘주어 말한다.]

['경제'라 불리는 저 압도적 괴물에게 인류가 저항할 방법은 그 괴물을 움직이는 본질적 연료인, 생명에 대한 무관심을 떨쳐내는 것이다.]

[무언가를 아는 것과 무언가를 느끼는 것 사이의 간극, 느끼는 능력보다 아는 능력에 더 높은 명예를 부여함으로써 계몽주의가 만들어놓은 그 단절을 우리가 치유할 수 있으려면, 과연 무엇이 인류의 항해를 위한 믿을 만한 해도가, 그 은유적 위도들과 경도들의 좌표가 될 수 있을까? 원대한 비전에 봉사하겠다고 지역적인 것의 진실성과 심오함을 슬쩍 빠트리는 일을 허용하지 않는, 은유적인 새로운 항해 지도에서 항정선과 경선의 좌표는 어떤 것일까?]

[나는 내 나라 미국의 불안정성이 부분적으로는 청소년이 갖는 이상-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이상과 어떤 대가를 치르든 자기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집착을 지지한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을 소수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독재국가의 시민들처럼 이 나라 사람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제된 선들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자라면서 서서히 이런 종류의 획일적이고 복종을 강요하며 제한된 한계 속의 삶이 실제로 자유를 뜻한다고 믿게 된다. 그들은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식으로 생각할 모험을 하지 못한다.]

[서구의 산업화는 중단 없는 여덟 시간의 수면이라는 새로운 휴식을 처방했고, 그것은 대부분의 일하는 사람에게 꿈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없애 버렸다.]

[그럼으로써 바라건대 제국의 종이 될 충성스러운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었다. 그 체계를 작동시킨 것은 분노와 옹졸함이 었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사회의 무관심(그리고 반대하는 소수의 정치적 무력함)이었다.]

[나는 불공평함이 피할 수 없다는 점은 받아들이지만, 우리가 그것에 허용하는 표현의 범위는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 이 평온한 현재에, 세상이 좀 더 무해해 보이고 용서할 기회와 받아들일 기회가 심장에 흘러넘치는 듯한 여기 이 순간에도 고스란히 존재한다.]

[괴로운 일을 상기하는 것이 반드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음울하게 곱씹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회상에는 폭넓은 시야가 제공하는 안도감도 함께 따라온다.]

[다윈은 양자 이론의 특징적인 불확정성이 자연계 전체에도 존재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유명한 통찰을 일찌감치 예고한 셈이다.]

["인간 이외 존재들을 윤리의 영역에 재배치하고 인간을 생태의 영역에 재배치하는 것"]

[호모 사피엔스가 오로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생태학적 관점을 취하고, 물리적 환경이 인간 유전체에 선택압을 가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단순 명료한 하나의 판단에 이르게 된다. 바로 환경을 보살피는 일이 자신을 보살피는 일이라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인종차별을 비난하며 무지와 두려움이 인종차별을 추동한다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종차별이 생존의 도구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가본 세상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사회계층이나 경제적 계층을 기준으로 누군가를 인종 차별 못지않게 악랄하고 부당하게 차별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묵살하는 일은 인종차별만큼 널리 비난받지는 않는다고 카모야에게 말했다.]

[이럴 때 우리는 바닥에서 일어나고, 다친 사람들을 돌보고, 죽은 사람을 땅에 묻고, 파괴의 잔해를 치우고, 다시 시작한다. 이웃들과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그들이 그들의 참사에서 회복하도록 돕고, 분노와 격분, 고집불통과 오만, 독선에 사로잡힌 이들을 진정시킬 전략을 이웃들과 의논한다. 이게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는 믿음을 다독이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입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 다른 누군가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다윈이 어느 종에게나 생물학적 진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건 개선이 아니라 새롭거나 변화하는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을 때, 그는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가 서구식 사고의 상당 부분과 근본적으로 상충할 것임을 알리고 있었던 셈이다.]

[그날 아침, 내 안에서는 인류를 향한 애정이 부풀어올랐다. 이는 우리 모두 괜찮을 거라는 희망, 우리가 서로를 더 완전히 수용하는 자비를 발견할 거라는 희망, 철학자의 기본 덕목이자 모든 종교를 초월하는 가치인 용기, 정의, 공경, 연민을 더 깊이 받아들이리라는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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