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평범하고도 까다로운 이야기가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우리의 평범하고 까다로운 이야기를 꺼내 듦으로써, 타인의 삶을 기꺼이 자비로이 바라본다는 것.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타인의 삶을 기꺼이 자비로이 바라보아야 한다. 비록 내 삶이 지독하게 느껴질 때라도, 그래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다른 껍데기 안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어질 때라도.]
[고립 속에는 파토스가 존재하지 않음을, 타인의 역경과 무관한 역경은 존재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고독이 은유를 찾아다니는 것은 정의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명할 수 있는 동반자, 즉 비유 속에서 싹트는 동류의식이라는 약속을 위해서다.]
[나 같은 사람, 그러니까 여행할 특권이 있으며 여행을 자기 정체성 일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종종 자기 같은 사람들이 이미 가본 곳이 아닌 다른 어떤 곳을 여행하고 싶어 하며, 종종 이런 여행을 더 "진정한" 것이라고, 덜 "관광객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관광객이 없는 자프나에서 나는 덜 관광객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았다. 그 반대였다. 내가 볼거리가 되고, 이해의 대상이 되고,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럴 만도 한 것이 내가 그곳에서 할 일이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쓸모없었다.]
[즉흥성은 우리를 너무 많은 맥락, 너무 많은 조사, 너무 많은 의도가 가진 무거움과 복잡함에서 해방함으로써 우리에게 진정성을 허락한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즉흥성이 허락하는 것은 무지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 장소를 바라보는 것은 그 어떤 시각도 아니다.]
[사악한 계모는 아무리 잔혹하다 한들 동화 속 다른 어떤 등장인물보다 큰 상상력과 결단력을 지니며, 요술 거울이라든지 허영심, 자만심 같은 아무리 하찮은 도구가 주어졌다 한들 그것을 가지고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경우가 많다. 교활함과 악의로 부리는 기교이기는 해도, 기교 넘치는 예술가인 것은 매한가지다. 계모는 단순히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그저 어머니가 할 법한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뿐이다. 그것이 새어머니의 연료이고 곪아가는 심장이다.]
[모든 연애가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상대와 함께일 때의 자아를 창조해나가는 일종의 협업이라면, 이 작업은 때로 자아에 특정한 형태를 강요하는 횡포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때로는 가능한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는 출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때로 연애가 남긴 혜성의 꼬리(당신이 입었던 드레스, 당신이 발랐던 립스틱, 당신이 샀지만 결국 읽지 않았던 책, 당신이 좋아하는 척했던 밴드)는 부서진 족쇄처럼 느껴질 테지만, 때로는 그럼에도 아름답다.]
[나는 늘 연애가 처음의 자유분방한 사랑과 구속 없는 열정을 잃어버리는 순간부터 괴로워하곤 했다. 연애는 처음의 광채를 잃고 나면 흐릿하고 타협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결혼은 또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에 헌신한다는 의미였다. 사랑에 세월의 겹을 더하고 아찔함만큼이나 곤혹을 갖춘 친밀함 앞에 세우며, 찢어진 조각들을 재봉사처럼 이어붙이고 다른 면도 있어라고 말할 정도로 기나긴 무언가에 담기는, 지속이라는 줄무늬가 아로새겨진 아름다움이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은 내가 그것에 접근하지 않으면 살짝 덜 수치스러웠기에, 나는 만족 없는 열망의 상태가 편해졌어. 먹는 것보다 굶는 것이, 일상적인 사랑보다 어마어마한 갈망이 더 좋아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