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했는데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에뷔테른느 2025. 8. 7. 11:52

않아의 말에 어떤 말을 보태야 하지,
물어본다.
누구에게, 다른 않아에게.
어디서, 다른  에록에서.


[시는 언어의 관습적인 사용에 대한 거짓말이며
소설은 현실의 관습적인 사용에 대한 거짓말이다.]

[피가 태양의 성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은.]

[내 두 귀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싶어 몸밖으로 날아가는 밤]

[절벽에서 매 순간 뛰어내리고 있는 우리의 현재들처럼. 진행중인 상실처럼.]

[시인들은 누구나 죽음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얼굴을 하고 있다.
죽음에 잡아먹힐 행동만 골라서 한다.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시인들의 뇌는
극단적인 비현실과 존재의 부재와 매 순간 새로 탄생하는 소멸에 감염되어
매일매일 죽음 되기 장단기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매 순간 소멸하는 이별에 절여진 채 하루종일 징징거린다.
매번 승리하는 소멸에 패배하면서도
그것의 매혹에 감염되어 죽음의 문 앞으로 표류하고 표류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날마다 죽음보다 먼저 죽겠다고 몸부림치는 감염된 사람이다.]

[이것을 다시 거꾸로 놓으면 망각의 지형도가 그려진다. 망각의 그을음이 사람과 사물에게서 이름을 빼앗고, 테두리를 빼앗고, 막연한 흔적만 남기는 순서,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서, 인간이 자연의 운행에 잠기는 순서.]

[시인이란 시를 읽은 사람의 오해를 노숙자가 카트에 담은 짐만큼 질질 끌고 걸어가는 사람이다.]

[끝끝내 무의미로 치솟지 않는 글을 어떻게 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부적인 공명 속에서 연결되는 단어들의 마술, 이미지의 빛을 낚아채는 것에 대한 신념을 견지하는 것도 일종의 순교적 태도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총체적 오해를 대저택처럼 몸에 두르고, 매 순간 인내하는 오기, 도저한 부정이 문학이라고 믿는 것. 감각으로 지각할 수조차 없는 미망의 부조리, 그 부조리를 다시 구축하는 것. 고도를 기다리는 두 남자를 나무 아래 세워놓는 것. 일단 부재의 미래를 선취해보는 것. 그러다 결국엔 제 작품을 불태우는 것.]

[거대한 침묵처럼, 그 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지나 가며 우리를 위장하던 시간의 잔인을 씻어버리고 싶다.]

[이름의 나라에 환기하는 무위의 행위. 침묵의 비밀. 부재의 페레이드. 이름을 벗음으로써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그 어느 세상의 망각. 부재의 황홀경.]

[생각한다는 것은 갇혀 있음을 깨닫는 것과 동의어가 아닐까, 생각할수록 문을 열고 나가도 감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부조리 감옥에서 간수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아닐까.]

'읽기는 했는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0) 2025.08.11
심연으로부터  (0) 2025.08.10
낙원  (0) 2025.08.01
여자는 왜 모래로 쓰는가  (0) 2025.07.31
다시, 뒷면에게  (0) 202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