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했는데

작은 일기

에뷔테른느 2025. 7. 27. 19:04

지난 겨울부터 봄,
작가님과 열번은 넘게 같은 장소에 있었겠다.
같은 마음으로 정대만 깃발을 찾았겠다.
이제 다시 작가님의 소설을 만날 수 있겠다.
그런 나라가 되어 다행이다.


2024년 12월 7일 오후 5:37
분노한, '우리'로 단일하다고 간주하는 집단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소외감.
소수를 향한 다수의 불편.
너무 많은 사람들 틈에서 강화되는
정상성 요구, 단일한 집단이 되려는 욕구.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로 광장에 모인 거대
한 집단이
보수적인 정상성을 추구하고자 할 때
단지 그 자리에 섞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닥치라는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을 쓸 것.
특히나 분노한 사람들 속에서.

[그 무서운 일을.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 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12월 22일 오후 열한시 오십사분
남태령.
마중 나간 사람들.
배웅까지 완성한 사람들.

[일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남태령 소식을 들었다. 내가 습관적으로 체념한 자리에 찾아간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그 자리를 지켰고 막힌 길을 뚫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 들이 다 거기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단편을 쓰려고 가 지 않았다. 실시간 영상으로 현장의 말을 듣고 눈으로는 원고를 보면서 내 늙음을 돌아보았다. "전농이 지금 남태령에 와 있다.” 나도 그날 광화문에서 그 말을 들었는데. 그게 되지 않을 거라고 먼저 믿는 마음, 보고 들은 바대로 학습된 포기. 부끄러웠지만 오늘은 그 부끄러움이 기꺼웠다.]

—1월 5일 일요일
공식 집회가 끝나고 나는 자리를 떴지만 많은 이들이 어젯밤, 한강진 관저 앞을 떠나지 않았다.

아직도 사람들이 남아 있는데 나는 이러고만 있다.
잠깐이라도 다녀올까, 했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

[젊은 남성들의 이 고집스러운 고립이 징그럽다. 뭘 어떻 게 하면 좋을까. 냉소와 혐오와 자기연민과 기만으로 가득한 그들이 놀이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롱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이제 더 보고 싶지 않다.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 폭력이 그들과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나오는 길에 정대만 깃발을 든 기수를 보았다. 깃대에 기대 선 듯한 모습으로 좀 지쳐 보였는데 무대에 오른 발언자가 "투쟁으로 인사하겠다"고 말하자 대답하듯 깃대를 흔들었다. 발을 딱 벌리고 서서 기를 버티는 모습이 늠름해 보였다. 다가가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놀랄까 싶어 그만두었다. 12월부터 이어진 집회 내내 그에게 품은 고마움이 있다. 매번 광장에 갈 때마다 그의 깃발을 눈으로 찾곤 했고 거의 빠짐없이 그 깃발을 보았다. 광장에 나설 때마다 그걸 보고 방향을 '옳게' 찾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낀 순간이 여러번이었다. 다른 깃발도 많지만 내게는 이 시국 광장의 표지가 그였다. 열렬한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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