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했는데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인기없는 에세이)

에뷔테른느 2025. 7. 1. 19:04

안타깝게도 여전히 유효한-인기있는 에세이


[변화와 진보는 다른 것이다. ‘변화’는 과학적이고, ‘진보’는 윤리적이다. 변화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진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가? 극복할 수 있다면 잠시 동안인가 아니면 영원토록인가? 정신이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가. 아니면 물질이 정신을 완전히 지배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물질과 정신은 각각 어느 정도 제한된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가? 우주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맹목적인 필연성에 의해 움직일까? 우리가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자연법칙들은 단지 우리의 질서에 대한 사랑에서 생겨난 환상에 불과한가? 만약 우주적 규모의 계획이 있다면 생명은 천문학이 생각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가? 우리가 생명을 강조하는 것은 단지 지역주의와 자기중요성에 불과한가?]

[당신은 항상 정치와 지성을 치열한 경쟁으로 보고, 자신이 충분히 진보적이거나 지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봐 너무나 두려우신 것뿐입니다.]

[...어리석음은 영원하지만 그럼에도 인류는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상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초연하고 객관적인 태도는 역사적으로 볼 때 어떤 특정한 전통 믿음과 연결되어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초연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이러한 믿음 없이도 가능할 뿐 아니라 실제로도 중요한 일이다. 중요한 작업을 할 때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어느 정도는 고립되어야 한다. 동시대 대중의 찬사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받는 것은 신학적 믿음이 쇠퇴해서가 아니라 고독을 잃어버렸 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혼란은 문화라는 꽃을 적대시한다. 일반 대중은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고, 따라서 자신들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자유를 용인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우리는 문명의 요구가 당파심의 요구를 다시 압도할 때까지 더 평온한 시기를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일부는 조직화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계속해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체제는 허점과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들을 모두 짓눌러 버리고 말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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