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론을 말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세월호를, 또 다른 박근혜를 만나게 되었다. 또 다른 직무유기와 부정부패와 독선이, 직권남용과 권력의 사유화가 우리 공동체를 집어삼켰다. 심지어 독재가 다시 시작될 뻔 했고, 민주주의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세력에 의한 국민주권의 상실이 도래할 수도 있었다.
엊그제 선거가 끝났다. X들을 지지하는 40이 점점 세를 늘려 나갈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철학은 진리의 상실을 함께 슬퍼하며, 그로부터 비롯된 조난에 동참하고, 그들의 방황이 말해지고, 긍정되고, 지속될 수 있도록 언어를 세공한다.]
[유가족들의 투쟁과 방황이 낯설고 불편한 모습으로 비쳤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방황은 우리의 현재를 흔들고, 안정된 일상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진실한 슬픔은 존재를 적신다. 아주 조금씩,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힘으로 그들의 슬픔은 우리의 삶을 물들게 하고, 과거의 시간이 반복되는 것을 멈추게 한다.]
[우리의 평온한 일상은 사실 '적당히 속아주는' 기능에 의해 지탱된다. 인간의 마음이란 그렇게 적당한 허무주의에 의해 방어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국가권력은 추방을 명한다. 뒤집어 말한다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적당한 속임수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곳을 지탱하는 환상, 일종의 하얀 거짓말에 대한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고정관념이기도 한 환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본분에 충실하라", "각자에게 허용된 욕망의 한계를 넘어서지 말라". 그러니까 "너무 많은 것을 욕망 하지 말라". 따라서, 삶과 세계의 변화를 겨냥하는 욕망에 관한 한 언제나 "다음번에 오시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과 공동체의 안녕은 위협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것은 20세기를 지배했던 한반도의 독재자들이 대중들을 세뇌하기 위해 사용했던 가장 흔한 레퍼토리였다.]
[환상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선거는 끝났으니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삶에 충실하라고. ... 그리하여 극단적으로 제한된 유사-민주주의는 우리를 군사독재보다 더욱 가증스런 환상에 매몰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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